2017년 5월 23일
글: 임애자(사회복지사)
날씨가 쌀쌀하니 무릎에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몸도 예전만큼 가볍지 않아 수영장에 자주 가게 되었다. 수영장 사우나에 있다 보면 한국 어머니들의 사우나 토크가 얼마나 재미 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참을 앉아 있곤 했다. 뜨거운 곳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편인데도 어느새 사우나는 이야기 나누는 맛에 자주 가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사우나 토크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편안한 일상의 대화는 서로의 나이를 밝히고 형님 아우로 관계 설정을 하면서 시작된다.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신체적으로 아픈 이야기, 처음 이민 와서 겪었던 우여곡절, 한국에 다녀 온 이야기, 여행 이야기까지 각자의 삶의 여정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헌신으로 섬겼던 자녀들은 어느덧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성장하여 둥지 밖으로 날아가고 없지만 어머니들은 이렇게 우리 나라사람들과 한국말로 대화도 나누고, 서로 걱정 해주며 각자의 아픔까지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 다행이다 라며 사우나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였다.
사우나에서 오고 가는 많은 대화 중에 나의 귀를 가장 솔깃하게 했던 건 바로 완경기를 겪었던 어머니들의 경험담이었다. 어머니들의 나이라면 누구나 겪고 또 이겨낸 완경기지만 다양한 증상들이 서로 다른 경험으로 나타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 변화들이 일상 생활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이었는지 목소리가 점점 높이 올라가기도 하였다. 서로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는 공감은 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깊은 위로가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실제로 완경기가 찾아오면 자신도 모르게 하루 일상에서 짜증이 늘어나고, 편안하지 않은 마음이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날카롭게 표현되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러지’ 라고 반성하면서도 감정의 변화들은 쉽게 바꿀 수도 어떻게 조절할 수도 없어 본인은 물론 남에게 원망이 되고 또한 주위 사람들을 피하게 되어 더욱 외롭고 깊게는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동시에 완경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나 자신’ 만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삶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적용됨을 보면서‘어떻게 하면 완경기를 현명하게 극복 할 수 있을까’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제 2막인 완경기를 보다 지혜롭고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지난 해 처음 완경기 그룹을 시작하였다. 수 년간 홀로 완경기를 겪어오며 힘든 시간을 보냈던 한 분이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서로의 경험을 나눠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5주동안 완경기 그룹을 함께 하였다.
그룹에 참여하였던 분들과 완경기를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해하면서 나누었던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이 큰 위로와 공감이 되어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춥고 움츠려 드는 계절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잘했노라 토닥토닥 거리며 서로 위로하는 시간이 되기를 또 한번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