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정착한 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한국을 떠난 지 엊그제 같다’라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을 정도로, 뉴질랜드에서 산 날과 한국에서 살아온 날이 엇비슷해졌다. 길고, 지루한 이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세월도 몇 안 되는데, 인생담이랍시고 꺼낼 이야기도 없거니와 그런 고루한 성격도 아니다. 그래도 모처럼 짧은 글이라도 적을 기회가 주어졌으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회사에 관해 이야기 하려면, 필연적으로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중요하다는 좋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얻은 기회는 아니었고, 평범하게 오클랜드 대학에서 4년제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몇달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잡은 자리였다.
Community Support Worker라는 이 직업은 Social Worker (사회 복지사)와는 다르게 한국인에게 매우 생소할 것이다. 한국어 사전에 아직 등재되지도 못했으니, 뭐라도 이름을 부쳐야 겠는데, 이것 또한 대단히 어렵다.
‘사회봉사자’라고 부르기에는 봉사의 개념과는 다르다. 엄연히 돈 받고 일하는 직업이니까. ‘사회 도움 근로자’? 뭔가 대단히 어색하다. 그러니 그냥 Community Support Worker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하는 일은 사회복지사랑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사회 복지학과를 나온 많은 이들이 Community Support Worker로써 일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분야가 워낙 다양하고 넓어서, 내 직업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소개하고, 본래 목적이었던 회사 소개로 넘어가고자 한다. 소개는 매우 간단하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일인 직업이다. 그리고 이‘도움이 필요한 이들’중,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돕는 게 내 일이다.
Kāhui Tū Kaha
비영리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며, 1973년 정신병동을 퇴원한 뒤, 사회에 거주하는 이들을 도우려고, 처음 설립되었다. 역사가 제법 오래된 만큼 여러 이름을 거쳐 갔는데, 최근까지는 ‘Affinity Services’ 라고 불리다가, 작년 말에야 ‘Kāhui Tū Kaha’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마오리 언어로, 뜻은 ‘Working together-standing strong’ (강하게, 그리고 함께 일한다)’이다. 또한, 총 세 개의 가치관과 뜻을 밑바탕으로 일하는데, 이는 회사 설립 이유와 근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 Manaakitanga (마나키탕가: 다른 이의 마나 – 명성, 힘, 영향력 등 마오리족의 근간이 되는 정신적인 어떤 것, 혹은 나아가 모든것 – 를 높이다).
• Rangatiratanga (랑가티라탕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주적 결정을 지지하다).
• Whakawhanaungatanga (파카파누가탕가: 관계, 소속, 유대감을 맺다).
팀 수만 해도 달걀 한판은 넘는 제법 큰 회사라, 하나하나 설명하기엔 지루할 수 있으니 – 결코 내가 귀찮아서가 아니다 – 읽고 있는 독자분들이 알아두면 좋을 팀 하나만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Asian & Muslim Mobile Team이다. 현재는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지만, 작년만 해도 나도 이 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클랜드 사우스와 센트럴 지역에 거주하는 아시안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반드시 GP나 Mental Health Key Worker를 거쳐서만 신청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이 팀에 한국인 Community Support Worker는 없다.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일주일에 기본 한번 – 필요하다면 두, 세 번도 가능 – 방문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째 목표인 만큼, 의존성이 짙은 도움은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두 번 GP를 만나야 하고 가까운 Countdown에서 장을 보셔야 하는 분이 있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혼자 가는 법을 모르신다. 영어가 어려운 만큼, 버스도, 하다못해 택시를 타기도 이분에겐 어려운 것이다.
그럼 이분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필요하다면, 버스카드를 사는 작은 일부터, 버스를 직접타고 원하는 장소까지 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룹이 아닌 1:1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고기’ 자체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 외에도, 영어가 서툴러 혼자 집에만 머무는 분들이 – 집에만 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보통 이로인해 우울증 등이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400자가 목적이었는데, 벌써 600자를 훌쩍 넘은 게 말 많은 성격이 글에서도 드러나나 보다. 짧은 글이고, 처음 적는 만큼 엉성함과 미숙함은 숨길 수 없어서, 사실 좀 부끄럽다. 깊이 있는 글도 아니라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거나 마음에 와닿는 글도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 한명의 독자라도 ‘나름 괜찮았다’ 라고 생각했다면, 그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비효과처럼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처럼 Community Support Worker가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겐 생소할 내 직업과 회사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
(새움터 회원- June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