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과 운명공동체

2011년 3월 9일 황주견(사회복지사)

라고?” “정말?” “아이구 참 그 집 참 힘들겠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 집이 영 아이들을 힘들게 하잖아!” “내가 작년에 그 집에 갔을 때 그 애가 방안에만 쳐박혀 있고 인사도 하지 않더라고. 그 때부터 좀 이상하다 생각했었어” “그 집도 바쁘잖아! 아이 돌볼 시간이 있었겠어? 아이 잘 되자고 이민 와서는 그게 무슨 꼴인지! 쯧쯧”

아마도 한 번쯤은 이런 대화를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주변에 혹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우연히 아는 분들의 가정에 발생한 어떤 좋지 않은 일들을 듣게 되면 흔히들 하게 되는 대화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여러분 자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나 혹은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제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대답은 ‘그런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지’입니다.

행여 좋지 않은 일들이 내 주변에 생긴다면 가족들 안에서 잘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좋지 않은 일로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특히 그 문제가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비록 한국사회도 서구의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적인 사고와 행동방식이 점차 스며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의 문화는 ‘가족중심’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 형제, 자매, 부모의 자랑이 나의 자랑이 되기도 하고, 반면 그들의 부끄러움과 수치가 바로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가 되기도 합니다.

나에게 혹은 나의 가족이나 친지들 중에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가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겠습니까? 우울증을 앓거나, 사람들과 잘 적응하지 못하고, 때로는 가족들의 눈으로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거나, 심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을 겪고, 더 나아가서 자살충동을 자주 느끼는 이가 내 가족이라면 혹은 나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합니다. 왜 그러한 경향이 서구사회에서 보다 한인사회가 더 강할까? 그 열쇠는 단순한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자로 사람을 표현 할 때, 우리는 사람 ‘인’(ㅅ)으로 표현 합니다. 두 개의 기둥이 바닥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각자의 기둥이 서로 잘 버텨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 기둥은 바로 서지 못하고 넘어지게 됩니다

공동체 개념이 발달된 한국인 사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집단은 바로 “가족”입니다. 내 자신이 바로 가족이 되고 가족이 또한 내가 되기도 합니다. ‘ㅅ’자처럼 가족은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공동체’라는 개념은 가족과 사회를 끈끈히 묶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반면에 그 공동체 집단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 공동체 전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내 가족 안에 혹은 본인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음을 알리고 도움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족 운명공동체의 불명예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들로 인하여 한인들의 정신건강은 점점 더 악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