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완경기 그룹을 마치면서

2017년 7월 25일
글: 김희연(새움터 회원)

 

지난 6월 21일이 뉴질랜드에서 낮이 가장 짧은 날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동지 즉 겨울의 한 중앙이지요. “후유 절반은 지났구나”안도의 숨을 조심스럽게 내쉽니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저에게 항상 쉽지 않습니다. 이곳으로 옮겨와서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제는 아마 영원히 적응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한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입니다. 바닷가와 산타클로스의 조합은 처음 라이스 푸딩을 먹었을 때 느끼는 느낌 “어! 왜 밥이 달지”하는 생경한 느낌 그대로 입니다.

 

또 하나는 비 오는 6, 7, 8월의 겨울입니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지는 않아서 창 밖의 잔디는 푸른데 마음과 몸은 쉽게 잿빛으로 변합니다.“걍 난방 하면 되잖아, 궁상이야”하고 서울 아파트 사는 동생은 쉽게 말하지만, 식구들이 다 출근하고 혼자 남은 단독주택에서 나 자신을 위해 넉넉히 난방하는 일은 저에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으슬으슬함이 다만 온도계가 가리키는 숫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에서 오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커져서 더 손길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고 우스갯 소리로 남의 편이라 “남편”이라고 부른다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나름 바빠서 그 세계가 따로 나누어지는 듯하면 그 한기는 더 깊숙하게 스며듭니다.

 

이런 계절에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어디를 갈 때가 있고 누구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됨이다. 특히 만나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비슷한 경험을 안전한 환경에서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진행된 완경기 그룹이 지난주로 마쳤습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새움터와 한국여성건강증진회 회원들과 함께 준비해서 완경기의 육체적 증상, 감정 조절방법, 긍정적인 대화 방법, 우리 삶의 스트레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를 놓고 간단하게 주제 발표를 하고 서로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 먼 길에서 운전하고 오셔서 지속해서 참석해주신 참석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상투적인 표현 같아 말씀 드리기 쑥스럽지만 그래도 여러 참석자 분들이 있어서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고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완경기를 준비하시는 분, 겪어 내시고 계신 분들, 살짝 넘어선 분들이 모두 함께 모였습니다.

 

한번은 아직 완경기가 되지 않은 젊은(?) 엄마가

“사는 것이 여태까지도 힘들었는데 완경기가 돼서 더 힘들어지면 어떻게 해요?”

라고 걱정하니 다른 참석자 한 분이 아주 따뜻한 어조로 말씀하더라고요.

 

“여태까지 아주 힘들었으면 더 튼튼해졌을 테니 완경기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젊은 엄마가 인생 선배의 조언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은 마침 방학이라 많은 분이 참석을 못 해서 아쉬웠지만, 각자가 본인에게 어울리는 카드와 꽃 화분을 고르고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글을 카드에 적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지금 작은 꽃 화분이 부엌 창가에 있고 아침에 일어나 그 화분을 보며 미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몇몇 친숙한 얼굴을 상상해 봅니다. 또 하루에 수십 번 냉장고를 열 때 마다 냉장고 문 앞에 붙어 있는 카드가 조그마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친숙한 얼굴들에게 말을 겁니다.

 

“올 겨울도 수고했어.”

내년에 다시 또 새로운 얼굴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강건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