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특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산을 산이라고 하고 물을 물이라 합니다
몸을 옷으로 감추지도 드러내 보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물음표도 많고 느낌표도 많습니다.
사금파리 하나도 업신여기지 않고 흙과도 즐거이 맨손으로 만납니다
높은 하늘의 별을 우러르기도 하지만 청마루 밑 같은 낮은 데에도
곧잘 시선이 머뭅니다.
마른 풀잎 하나가 기우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 한 금도 헛보지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그 기대로
가슴이 늘 두근거립니다.
이것을 지나 온 세월 속에서 잃었습니다.
찾아 주시는 분은 제 행복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고요? 흔히 이렇게들 부릅니다.
“동심”
동심이 세상을 낫게 한다고 굳게 믿은 어른 동화 작가 정채봉님의 시는 참 따뜻하다. 1980년대 동화가 성인 주류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임에도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수많은 작품상을 수상하고 대중적 사랑을 받으며 어른 동화라는 한 장르를 개척한 그의 작품은 늘 외할머니의 손에서 느껴지던 온기로 내게 다가온다.
그러나 누구나 그립고 행복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동심에 새겨져 있는 것 만은 아닐것이다. 특히나 자아가 형성되는 소아기나 청소년기에 겪은 정신적 외상, 흔히 트라우마 (Trauma)는 무의식 안에 잠재되어 한 개인의 인생안에서 어두움을 드리우고 벗어나기 힘든 무게로 삶을 짓누르게 된다. 최근 뉴질랜드 출신 감독이 연출한 작품인 조조래빗 (JoJo Rabit)을 관람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끝무렵 나치 유소년단에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무비판적으로 세뇌된 독일 소년과 유태인 대학살을 피해 소년의 집에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유태인 소녀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어떤 역사적 소용돌이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동댕이 쳐져 겪게 되는 트라우마는 주인공의 시각에 따라 그 성격과 내용의 결이 다를 것이다. 유태인 소녀는 ‘나’라는 1인칭 시점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하루 하루 숨어지낸다. 시간의 흐름 속에 독일 소년은 소녀가 처한 상황을 ‘그녀’라는 3인칭 시점에서 서서히 ‘너’라는 2인칭 시점으로 그 시각이 변화된다. 이 과정 안에서 독일 소년은 왜곡되어 강요된 사회적인 믿음과 같은 또래로 눈 앞에서 보이는 진실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의 결말과 무관하게 이러한 충격적인 각자의 경험은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개인의 성격에 내재될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서 부터가 문제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는 결국 언젠가는 정신 건강에 이상이 오는 그 뿌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소 업무상 노인성 치매로 어려움은 겪는 많은 분들을 뵙게 된다. 노인성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언어 인지 능력만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행동 이상도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치매는 여전히 그 원인과 처방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는 많은 의학 분야 중 하나이다. 노인성 치매를 겪는 분들 중 어린시절 동심에 큰 상처를 입은 분들을 많이 접했다. 또한 치매증상과는 별개로 노년에 겪게 되는 우울증이나 다른 형태의 정신 건강의 문제의 시작은 치유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들과 어느 정도 그 연결고리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조조래빗의 두 주인공들이 겪은 역사적인 비극에서 비롯된 상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것이다. 이들이 경험하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공포와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족안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각자 개인으로 경험한 정신적 외상도 개인에 따라 그 상처의 크기와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 특히나 어린 시절 경험한 정신적 외상들 가령 가족안에서의 학대, 학교내 따돌림이나 부당한 체벌과 같이 각자가 경험한 그러나 살아오면서 무심히 지나쳤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 안에 갇혀 있던 그 경험이 얼마만큼 내 동심에 상처를 남겼는지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자신에 맞는 치유의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움터 회원 장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