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자의 눈물

2017년 6월 27일
글: 임애자(사회복지사)​

늦은 가을이라서 일까? 축축한 길가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을 볼 때 마다 한국에서보다 계절의 감각이 무뎌짐을 느끼게 된다. 매 년 이맘때쯤이면 왠지 한국을 방문하여 온전히 가을이라는 정서를 느끼고 싶어진다.

이곳의 가을은 공허하다. 한국만큼 많은 낙엽들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스산한 바람과 잦은 비로 인해 낙엽도 항상 젖어 있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온 몸 구석구석 휑한 바람이 스치며 타국에 살아간다는 막연한 낯설음에 마음이 더욱 쓸쓸해지곤 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요즘 남편의 어깨가 축 쳐지고 마음이 허전하다며 우울해 하고 있어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며칠 후 몇 몇 친구끼리 기쁨조를 만들어 위로 차 친구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친구 남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화색이 없고 눈도 퀭하니 비에 젖은 낙엽처럼 힘이 쑤~욱 빠져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서로 음식도 나누고 교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도록 도와주었고, 이내 그 분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며칠 전 SNS에서 중학교 친구들의 사진을 우연히 보다가 낯익은 한 죽마고우의 모습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그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사진과 함께 적혀 있는 글을 보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죽마고우를 위해 친구들이 마련한 마지막 동창 모임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너무 마음이 아파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복잡한 마음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술 한잔하자”라고 연락할 친구를 찾으니, 마땅히 연락할 곳이 없어 더욱 더 자신이 비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마음이 우울하니 잠을 설치는 날은 계속 되었다고 한다. 처음 식구들을 데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타국에 발을 디딘 후“이제 무엇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나”라는 생각에 밤마다 뒤척이며 설 잠을 자던 기억이 나기도 하였다 한다.

 

그때의 불안감과 두려움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배부르고 따스한가 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았지만, 마음 깊이 눌려져 있는 외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사무치게 마음이 쓸쓸하다고 말하며 친구 남편은 고개를 떨구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 연로하신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앞서는 날에는 잠도 식욕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날들이 계속되었다고 했다.

 

마음 속 깊이 감춰져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으며 흘리는 눈물과 긴 한숨을 바라 보면서 이야기를 듣는 우리도 다 같은 처지임을 공감하며 눈물을 훔쳤다.

 

한 참 시간이 흐른 후 한 친구가 다 큰 어른들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우는 모습이 우습다며 깔깔 웃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손가락질 하며 얼굴 쳐다 보며 한바탕 웃음 바다가 만들어 졌다. 마치 웃음 치료라도 받는 것처럼 손뼉까지 치며, 옆에 있는 사람 등을 치며 요절복통하듯이 웃고 나니 모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와 있었다. 순식간에 웃음이 해피 바이러스가 되어 퍼져 나가고 있었다.

 

모임이 끝날 즈음 환하게 웃는 그 분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기쁨조의 책임감이었는지‘아~ 살았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우리 기쁨조에 전해주었던 친구는 매일같이 성실히 일하는 남편이 잠시 일이 힘에 부쳐서 그런 줄 알았다며 앞으로 남편과 마음 속 깊은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겠다고 웃으며 선언을 하였다.

 

며칠 후 운전하고 가면서 우연히 그 분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말끔하게 차려 입은 옷과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그 분은 더 이상 비에 젖은 낙엽처럼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이 추운 가을과 겨울이 지나는 길목에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는 텅 빈 나뭇가지에 곧 새순이 돋아나겠지 라는 희망을 품은 생동감이 그에게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