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도 아픔을 치유한다   

2012년 2월 15일
배 태현

 

언젠가 두통이 심하고 몸이 너무 피곤해 한의사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저를 침대에 눕힌 한의사는 제 목과 머리 여러 곳에 침을 꽂았습니다. 침이 가늘어 아프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침이 들어간다는 생각에 좀 긴장이 되긴 했습니다. 여하튼 침을 맞으면서 뜸까지 함께 떴습니다. 배 위에 놓인 세 개의 커다란 뜸이 서서히 타 들어 가면서 뱃속으로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뜸이 더 깊이 타 들어 가면서 곧 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뜸이 너무 뜨거워질 때마다 받침을 올려 받치면서 한 시간 가량을 누워있었습니다.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침과 뜸의 효과가 금방 나타나 두통도 사라지고, 잃었던 기운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집에 도착했을 때는 훨씬 몸이 가벼워져 미루었던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몸에서 뜸을 뜬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는 바람에 샤워를 했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뜸을 뜬 자국이 내 배에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배 위에 불그레한 동그라미 세 개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아무리 타월에 비누를 묻혀 닦아도 그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뜨거운 뜸에 가볍게 데인 상처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나를 치료한 흔적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자국을 보면서 그것을 상처로 여길 수도 있고, 치료의 흔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조국과 부모와 형제를 떠나 먼 나라에 와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니 이민자들은 다들 외롭습니다. 그러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급속도로 친해집니다. 처음엔 서로 모든 것이 좋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방의 단점과 속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때론 이해관계가 얽히기도 합니다. 서로 갈등이 생기고 관계가 악화되다가 어떤 동기가 주어지면 그 관계는 하루 아침에 깨어지고 맙니다. 관계만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급속도로 친해진 만큼 급속도로 상처를 서로에게 남깁니다. 결국 서로 원수가 되고 맙니다. 그뿐이 아니라 이민자의 삶 자체가 많은 면에서, 아니 정서적으로까지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너도 나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상처는 아프지만 그러나 그 아픔이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고 나를 치유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픔이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이 억지며 역설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아픔을 겪으면서 생에 대한 더 강한 애착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생에 대한 더 강한 동기를 부여 받게 된다면 그것은 아픔이 주는 치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 내가 가진 상처가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다른 사람에게는 놀라운 치유의 자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있고, 그가 내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픔과 아픔이 만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아픔을 아픔으로만 가지고 있다면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아픔을 치유의 자원으로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내십시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