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 제트와 아수라 백작

마징가 제트와 아수라 백작

2017년 12월 11일
글: 김희연(새움터 회원)

 

“기운 센 천하장사 /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제트”

 

어렸을 때 좋아하던 만화 영화 주제가이다. ‘마징가 제트.’ 모태 음치에다 한두 소절의 가사도 재대로 못 외우는 내가 드물게 기억하는 가사이다. 그래서일까. 이 만화 영화 주제가는 어떤 멋있는 가곡이나 팝송 못지않게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백 번 수천 번 듣고 부른 것이 그대로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내 삶을 살아 내고 있다. 나는 ‘천하장사가 되어야 한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생존 전략이다. 어쩌면 그것이 힘에 겨워 이민을 왔는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에 와서는 ‘인조인간’이 되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감정이 없는 인간.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가끔 감정은 제일 먼저 버려야 하는 사치스러운 장신구 같이 느껴졌다. 이 만화의 주인공 마징가 제트만큼 강렬한 인물이 있다. 아수라 백작이다. 절반은 여자 절반은 남자. 나는 마징가 제트가 되기를 바랐다면 내 아이들은 아수라 백작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에서는 완벽한 서양인. 집에서는 완벽한 한국 사람.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정체성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며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을 기대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언어만 해도 그렇다. 두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어렵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엄마! 육수와 수육이 어떻게 달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뉴질랜드에 온 큰딸아이가 던진 질문이다. 한자를 공부하지 않은 아이에게 육수와 수육은 그 말이 그 말 같은 것이다. 이민 와서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한국 텔레비전과 책을 멀리하고 10년을 넘게 살았다. 이제 아이들에게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전화 통화가 한국말 언어능력 테스트가 되어 버렸다. 지역 사회(Community)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만난 한국 아가씨가 있다. 주류 사회 사람들과 일을 하니 영어는 잘하리라고 짐작한다. 나에게 조곤조곤 건네는 한국말도 참 따뜻하다. 아들이 있으면 며느리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느 날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선생님 참 착하셔요”라며 해 맑게 웃으면서 말한다. 직감으로 알았다. “It’s very nice of you.”라는 말이었다. ‘착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때가 언제인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종종 듣던 말이다. 사회에서는 100% 완벽한 서양 사람, 가정에서는 100% 완벽한 한국 사람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인정할 때 내 아이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가 줄어들 것 같다. 아이가 뉴질랜드 문화에 접한 만큼 아이는 뉴질랜드화 되어 가고 있다. 아이 안에 한국과 뉴질랜드 문화가 섞여가고 있다. 그들 고유의 새로운 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 기대된다. 아수라 백작의 새로운 탄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