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당신의 뇌는 안전합니까?

2014년 6월 11일
글: 한영희(상담사, 아시안패미리 서비스)

 

박 여사님은 모처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던 박 여사님이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나 집에 가스 불 안 끄고 나온 것 같아.” “그럼 빨리 집에 전화해”하며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가방 안을 뒤척이던 박 여사님이 “나 핸드폰도 두고 왔나 봐…”라고 울먹이며 말하자 친구가 자기의 휴대폰를 박 여사에게 건넸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전화를 하려던 박 여사님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습니다. 집 전화번호는 물론 남편이나 아이들 휴대폰 번호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부장님은 슈퍼마켓에서 매장 관리일을 25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재고를 파악하여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야 하는데 지금은 머리로 간단한 숫자 계산을 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예년에는 웬만한 것은 다 암산으로 거뜬히 했었는데 말입니다. 점점 계산기에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박 여사님과 이 부장님 뿐만이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출할 때 네비게이션 없이는 잘 다니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이 똑똑한 디지털 기기가 얼마나 편리하고 사랑스러운지 또 이 기기를 사용할 줄 아는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을 따라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도중에 그만 스마트폰의 전원이 꺼져버렸습니다. 순간 “어, 어떻게 가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급히 차를 길가에 세우고 생각해 보니 초행길도 아닌데 어떻게 가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네비게이션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몇 번 갔던 길조차 네비게이션 없이는 갈 수 없는 처지로 변한 내 모습을 보며 ‘어, 나 이러다가 치매 걸리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치매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기억력이나 집중력, 계산능력 등이 크게 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휴대폰에서 이름을 찾아 통화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따로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고, 중요한 일정이나 약속들도 컴퓨터나 휴대폰에 저장해서 사용하니 기억할 필요가 없다 보니 뇌의 기억 능력은 점차 쇠퇴하면서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현상은 사람의 두뇌가 할 일을 편리한 디지털 기기들이 대신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의 3분의 1이 가족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절반 이상이 가족 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한두 개 정도만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나 디지털 치매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일본 고노 임상의학연구소에서 발표한 7가지 디지털 치매 자가진단 방법입니다.

1.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회사 번호와 집 번호뿐이다.

2.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중 80%는 이메일과 문자로 한다.

3.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4.신용카드 계산서에 서명할 때 외에는 거의 손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5.이미 본적이 있는 사람을 처음 만난 사람으로 착각한 적이 있다.

6.‘왜 같은 얘기를 자꾸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7.네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기가 어렵다.

 

고노 연구소에서는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해당하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자가 진단이 절대적인 진단은 아니지만, 꾸준히 증상을 점검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디지털 치매의 위험성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기억력 감퇴는 천천히 지속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힘들고 스스로 ‘혹시 나도 디지털 치매?’ 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다음 호에서는 디지털 치매의 위험성과 이를 어떻게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