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책임감

2012년 1월 1월 18일
배태현

 

지난 호에서 정신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 희망이야기를 드렸습니다. 희망을 가지는 것과 아울러 또한 우리 삶에 역동을 주는 중요한 정신건강 무기(Wellness Tools)는 개인적 책임감입니다. 죽을 것 같이 힘이 들고 사방이 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개인의 책임입니다.

 

상담을 위해 오시는 고객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힘든 상황에서도 상담 받으러 올 힘이 있어 시간을 만들고 운전을 하고 나오셨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것이 너무나 귀해서 기립 박수를 보내 주고 싶다. 어려운 상황에 몰입하면 일어 나고 싶지도 않고 불안 초조 좌절로 얼굴색도 칙칙해 지고 사람도 피하고 싶어 진다. 희망이 없으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의욕조차 없다. 더군다나 가정사의 어려움을 좁은 한인 사회 안에 꺼내 놓으면 하루가 못되어 뒤통수를 맞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에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선택하고 만다. 화병과 우울증을 선택하는 것이 남이 수군대는 것을 듣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고 의존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나를 먼저 내어 놓고 내 마음의 고통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은 개인이 할 일이다. 얘기를 솔직하게 했더니 들으신 분들 중에 반응이 시원찮은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아마 본인의 문제로 아프신 분일 확률이 높다. 남의 아픔을 받아 들일 여유가 없어 피하거나 핀잔이나 조소를 던질 수도 있다. 어쩌다 그런 분 한 사람으로 인해 모처럼 열었던 마음 문을 닫아 버리면 건강한 삶으로 나아 갈 수가 없다. 이야기를 듣는 분 중에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건강한 분이 분명히 있다. 거기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교제를 해 나가는 것이 개인의 책임이다. 피할 수도 있고 용감하게 오픈할 수도 있다. 거기까지는 개인의 선택이요 책임이다. 그러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피하면 병이 깊어 지고 외로워 지며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계속 남 탓만 하면서 나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므로 무엇 하나 인간 관계에서 풀릴 것이 없다. 흉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칩거해 버리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다 잃어 버리고 정신 건강에 절대적으로 해로운 깊은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 진다. 여기 고객이 들려 주는 삶의 지혜가 있다. 이혼을 하고 홀로 끙끙 앓다 결국 우울증으로 발전하여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분께서 막상 자신을 내어 놓고 아프다 했더니 많은 분들께서 따뜻하게 위로하며 참 한 편이 되어 주시는 것에 놀랬다고 말했다. 흉볼 줄 알았는 데… 진정 함께 마음 아파해 주고 한 편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나의 책임이 무엇인가?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조금 섭섭하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넘어 가고,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무엇보다 초기에 서로 잘 모를 때 오해가 발생하는 데 그것으로 관계를 끝내지 말고 미리미리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상대에게 알려 주고 상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 물어 보는 탐색의 기간을 가지는 것이 건강한 관계를 위한 개인의 책임이다.

 

개인은 모두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기준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틀릴 수 있으므로 나부터 마음을 열고 이웃을 향해 다가가는 개인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다면 정신 건강에 기적이 일어 난다. 한국인의 큰 장점이요 무기는 “정” 아닌가? 정이 있다고 믿고 살면 분명 가족의 정이, 친구의 정이, 이웃의 정이, 신앙 단체의 정이 나의 정이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