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라주는 내 아픔

2013.12.11
글: 조정임(새움터 멤버, 아시안패밀리 서비스 상담사)

 

경미씨는 부쩍 생각이 많아지고 불안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많은 생각을 해보지만 불안 초조가 심해질 뿐이다. 남편에게 자신의 불안한 생각을 말해 보지만 힘들게 일하고 오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단칼에 경미씨의 말을 잘라버린다. 자녀들에게 엄마 힘들다고 하면 틴에이저 폭풍우를 지나가는 두 아이는 귀를 딱 막고 반응이 없다. 오히려 이상한 눈빛으로 쬐려 보고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 보았는 데 어머니를 아프게 할 뿐 뾰족수가 없어 그것도 멈추었다. 주변인은 다 행복해 보이는 데 나만 불행한 것 같아 챙피해서 아무에게도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혼자인 것 같아 외롭고 눈물이 자주 흐른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싫어서 그대로 죽기를 날마다 소원한다.  그녀는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해서 GP를 찾았다. GP는 우울증 체크를 하더니 자살 충동이 강하니 항우울증 약과 함께 수면제를 복용하라며 아울러 상담을 위한 연락처를 주었다. 죽기 전에 말이라도 실컷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에 상담을 요청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의심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했다.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엄마를 무시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불안하니 자신을 알리기 위해 가족을 통제하며 자꾸 간섭하는 강박 증세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겉으로는 다른 사람때문에 섭섭해 하며 마음 아파하지만 실상  그녀에게 가장 큰 슬픔은 자신이 무가치하고 무능해서 사랑받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유능했다면 남편이나 자식이 자기 말을 잘 들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누가 말해주었는 지 물었더니 남편이나 자식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변인들도 살림잘한다고 칭찬한다고 한다. 자랄 때도 집안의 장녀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주변 상황을 두루두루 말하던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 졌다.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눈물을 닦으며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그녀가 고백한 것은 아버지가 자신이 4살 때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가셨다고 한다. 본인은 자는 척했지만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시는 것을 다 들었고 그 다툼 이후 아버지께서 큰 가방을 하나 들고 집을 나가신 후 소식이 끊어졌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아빠가 집을 나가신 것은 본인이 아빠를 기쁘게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엄마마저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살았다. 때로는 누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고 친해 지려고 하면 피하기까지 했다. 혹시 자신의 정체를 알면 자기 아빠처럼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는 생각과 그로 인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가족에 대한 집착이나 통제도 그 맥락이라고 했다. 남편이나 자식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버림받는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가족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마구 소리를 지른다든지, 내 말을 들어야 한다며 심한 통제를 했다.   우리는 과거의 고통이 그녀를 현재 지금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 의논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은 따뜻한 사람이며 아이들도 사랑스럽다고 했다. 남편을 상담에 초대해서 그녀의 불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서로 사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그녀의 불안증과 의심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갖기 시작했고, 아내는 그런 의심 불안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자신을 위로하며 과거로부터 자유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늘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 오던 남편과 일 주일에 한 번은 둘 만의 데이트 시간을 마련했다. 이렇게 본인이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용납하면서 또한 남편과 자녀로부터 이해를 받기 시작하니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웠던 그녀의 마음이 긴장이 풀어지고 느긋해 졌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요 언제나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이 믿어졌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많은 걱정이나 불안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 느낌을 그냥 방치하면 정신적으로 아픈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경미씨와 같은 상황이 내용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을 수 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자살, 부모님의 다툼과 폭력적 언어행동, 술, 도박 중독자가 있는 가정, 가족을 돌보지 않는 가장, 야단을 많이 맞거나 심한 통제, 혹은 높은 기대치를 요구받은 경험 등등의 과거에 발생된 어려움으로 현재나 미래의 행복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전문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